The Choir that God Elects (하나님께 택함 받는 성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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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the Spirit of the LORD came upon Jahaziel son of Zechariah, the son of Benaiah, the son of Jeiel, the son of Mattaniah, a Levite and descendant of Asaph, as he stood in the assembly.
He said: “Listen, King Jehoshaphat and all who live in Judah and Jerusalem! This is what the LORD says to you: ‘Do not be afraid or discouraged because of this vast army. For the battle is not yours, but God’s.
Tomorrow march down against them. They will be climbing up by the Pass of Ziz, and you will find them at the end of the gorge in the Desert of Jeruel.
You will not have to fight this battle. Take up your positions; stand firm and see the deliverance the LORD will give you, O Judah and Jerusalem. Do not be afraid; do not be discouraged. Go out to face them tomorrow, and the LORD will be with you.’ ”
Jehoshaphat bowed with his face to the ground, and all the people of Judah and Jerusalem fell down in worship before the LORD.
Then some Levites from the Kohathites and Korahites stood up and praised the LORD, the God of Israel, with very loud voice.
Early in the morning they left for the Desert of Tekoa. As they set out, Jehoshaphat stood and said, “Listen to me, Judah and people of Jerusalem! Have faith in the LORD your God and you will be upheld; have faith in his prophets and you will be successful.”
After consulting the people, Jehoshaphat appointed men to sing to the LORD and to praise him for the splendor of his holiness as they went out at the head of the army, saying: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is love endures forever.”
As they began to sing and praise, the LORD set ambushes against the men of Ammon and Moab and Mount Seir who were invading Judah, and they were defeated.
The men of Ammon and Moab rose up against the men from Mount Seir to destroy and annihilate them. After they finished slaughtering the men from Seir, they helped to destroy one another.

성가대 헌신예배(20150125) 하나님께 택함 받은 성가대(대하 20: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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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대 헌신예배(20150125) 하나님께 택함 받은 성가대(대하 20:14-23)

(1)기도 – 하나님을 찾아라.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 당시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이 유다를 침공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하였습니다.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성소를 두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2)희한한 결정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세상 생각 기준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방법이 이해 안된다 ?)

그때 하나님께서는 레위 사람 ‘야하시엘’을 통해 이 전쟁에서 유다가 승리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15절) “너희가 싸울 것이 없다”(17절)는 하나님의 말씀에 여호사밧은 군사적인 전투 태세를 전혀 갖추지 않았습니다. 대신 참으로 희한한 결정 한 가지를 하게 됩니다.

(3)여호와를 찬송 – 성가대 구별하여 선택해서 군대 앞에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게 함

여호사밧은 백성과 의논하여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고 그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혀서 군대 앞에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게 했습니다.

선지자가 “이 전쟁에서 너희가 싸울 것이 없다”고 한 말씀을 듣고서 여호사밧은 생각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승리를 주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싸우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임을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의미로 그는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였습니다.

(4)믿음의 결정

이것은 여호사밧과 백성들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상대 연합군의 입장에서 볼때는 생사가 오가는 싸움터에서 전투 태세를 갖추기는커녕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찬양을 하게 한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미친 짓같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사람들은 너무나 진지하게 전쟁터에서 찬양을 부르며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 그 결과, 전쟁에서 승리하고 많은 전리품들을 획득하고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방에서 저희에게 평강을 주셨기 때문이다(30절)

☛서론 강조: 평상시 영적상태가 중요 – 영적침체를 조심하라 – 찬양이 최고다, 그리고 barometer 된다.

(완전 복음 누리는 상태를 유지하라) – 직장에서 발견한 최고의 전도: 감사, 기쁨, 찬양의 삶

하나님은 사람을 지.정,의를 가진 인간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즉 지식과 감정을 느끼고 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인지 기쁠 때,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마음이 괴로울 때는 슬픈 노래로 위로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찬양은 노래와는 다른 것입니다. 노래와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노래는 아무나 부를 수 있지만, 찬양은 아무나 부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하나님의 백성들만 부를 수 있으며, 그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지,정,의로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될 때, 진정한 찬양을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119:12절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12절 직역 “당신의 법으로 나를 진실로 가르치소서 여호와여 당신을 경배(찬양)합니다.”

▶창세기 3장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찬양의 대상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찬양의 내용도 잃어버렸습니다. 찬양의 방법도 잃어 버렸습니다. – 이것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노래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찬양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찬양을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입은 뻥긋 거릴 수 있어도 노래는 부를 수 있어도 그것은 찬양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은 성가대 헌신 예배입니다. 먼저 성가대와 함께 우리 모두가 여호사밧 임금의 삶을 살펴보면서 진정한 찬양을 회복하는 영적상태로 우리 모두가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1. 굉장한 축복 속에서 아합의 야망의 덫에 결려든 여호사밧

▶우리가 읽은 본문을 이해하려면 앞에 역사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1)여호사밧의 영적개혁(17:1-4, 7-9)

●역대하 17장을 보시면 유다에 아사왕이 죽고 유다의 4대 왕으로 여호사밧이 왕으로 등극합니다. 그리고 그는 거국적인 군정개혁과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산당과 아세라 상을 제하였고, 사람을 시켜서 전국을 순회 하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구하며 그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좇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패역한 행위를 좇지

아니였다.“(3-4)

(2)하나님의 축복 – 천년 축복을 받는 비결 –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역사하시면 천년의 응답이 시작된다

●이 일을 기뻐게 생각하신 하나님께서 여호사밧 왕에게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고, 그가 다스리는 나라를 왕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셨고 붙이셨기 때문에 그 어느 나라도 유다를 넘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군사만 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화가 극에 달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나라를 그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저가 부귀와 영광이 극하였더라“(5절),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3절)

“여호와께서 유다 사면 열국에 두려움을 주어서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시매 블레셋 중에서는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리며 은으로 공물을 바쳤고 아라비아 사람들도 짐승 떼 곧 수양 7,700과 수염소 7,700을 드렸으니 여호사밧이 점점 강대하여 유다에 견고한 채와 국고성을 건축하고‘(10-11절), ”용사만1,160,000 + 이는 다 왕을 섬기는 자요 이 외에 또 유다 견고한 성에 왕이 군사를 두었더라“(19절)

●16절: “시그리의 아들 아마시야니 저는 자기를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자라” – 하나님 잘 믿는 언약 잡고 충성하는 군대장관들이 많았다는 말이다. 생명걸고 왕에게 충성하고 헌신했다.

(3)문제의 시작 – 다른 곳에 눈을 돌림, 눈이 빼앗김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하나님만 바라 보아야하는 여호사밧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북이스라엘에 아합왕이었습니다.

18:1절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이 극하였고 아합으로 더불어 연혼하였더라”

①결혼동맹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아합과 결혼 동맹을 맺었습니다.

아합은 인간적으로 보면 정말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에 부와 평화와 군사적 강대국을 만들었던, 그리고 정치적으로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이세벨과 정략결혼을 하면서 바알과 아세라 목상으로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도록 만들었고 북이스라엘이 패망의 길로 걷게 만들었던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께서 열국으로 침노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힘을 주시고 극한 부귀와 영화를 주셨다면 그것으로 감사하고 만족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이렇게 잘 나갈 때 실수하고 말았습니다.

②군사동맹

여호사밧은 아합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왕으로서 아합은 흠모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직접 사마리아로 내려가기까지 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내려간다’는 말은 부정적입니다. 세상으로 가든가 범죄할 때 ‘내려간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올라간다’는 표현은 성전으로 가거나 긍정적인 이동을 표현할 때 ‘올라간다’고 표현합니다. 여호사밧이 내려갔다고 표현하는 것으로 그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18장 2-3절 “두어해 후에 저가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아합에게 나아갔더니 아합이 저와 종자를 위하여 우양을 많이 잡고 함께 가서 길르앗 라못 치기를 권하더라 이스라엘 왕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시겠느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니 당신과 함께 싸우리이다”

아합은 아람 왕 벤하닷이 침략해왔을 때 양국간에 협정으로 전쟁을 그치고 이스라엘에서 탈취한 성읍을 돌려주기로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자 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 당시 군사 강대국이었던 아람과 싸우기 위해 힘을 소유한 유다에 도움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③우선순위를 놓쳐 버린 영적상태에서 종교적인 행위에만 집착한 여호사밧

▶그래서 우양을 많이 잡으면서 여호사밧을 꼬드겼던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먼저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결정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를 불러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주객이 전도되어 버렸습니다.

●18:4절 이하를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께 기도도 안해보고 결정은 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여호사밧은 이미 자기가 먼저 결정을 한 후에 아합왕에게 청하여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보자고 합니다.(18:4) – 보통 우리는 이렇게 신앙생활한다

이에 아합은 이스라엘에 400명이나 되는 선지자들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한결같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 예언합니다. 그런데도 여호사밧의 마음에 차지 않았던지 다른 선지자가 더 없는지 묻습니다.

그때 등장하는 선지자가 미가야 선지자입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아합에게 가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왜냐하면 늘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를 부르고 싶지 않았지만, 여호사밧에 마음을 맞추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미리 부하에게 명령을 내려서 길한 예언을 하라고 압력을 넣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가야는 담대하게 전쟁에서 패할 것이며 아합이 이번 전쟁으로 죽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시드기야라는 선지자는 미가야에 뺨을 때리며 ‘너만 예언하느냐?’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합은 미가야를 감옥에 가두고 죽지 않을 만큼의 음식만 주도록 명령합니다.

④영적 우선순위를 놓쳐 버리고 나면, 한번 영적으로 타협하고 나면 틀린 것을 알면서도 결단을 못한다(악순환)

여기서 400명이나 되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이 틀린 것을 알았던 여호사밧은 미가야에 예언을 듣고 전쟁에 나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아합과 함께하고 말았습니다. 아합은 미가야에 예언이 마음에 걸렸던지 군사로 변장합니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되고 아람 사람들은 왕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합이 아니다는 것을 알고 여호사밧을 쫓지 않습니다. 그때 우연히 쏜 활에 아합은 관통 당하고 결국 죽게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언약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합과 여호사밧을 비교하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합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았습니다. 북이스라엘과 아합에게는 찬양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합이 찬양을 받았습니다. 선지자들은 아합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아부를 하며 아합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사밧은 자신이 닮고 싶고 흠모하던 아합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성가대 여러분 그리고 성도님들, 우리 한 주 삶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영적상태를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입술에 찬양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알아가는 은혜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였는지요? 찬양이 없었다면 구원의 감사와 감격이 사라지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그쳤다고 생각해도 될 것입니다. 서론에서 말씀 드렸듯이 찬양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자만이 올려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영혼에 찬양은 입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속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이 없다면 찬양이 입술에서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주일날 예배당에 와서 붕어처럼 입만 껌뻑이게 되는 것입니다. 성가대 여러분, 우리 삶속에 하나님을 알아감이 있었는지요? 사모함이 있었던가요?

▶여호사밧은 다른 곳으로 눈을 살짝 돌리다가 실수하고 말았습니다. 나의 흠모 대상은 무엇입니까? 물질, 내 자녀, 내 학업, 내 일이었습니까? 모두가 소중한 것이지만,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내 입술에 찬양을 빼앗아 가는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영적 침체는 말씀을 거부할 때부터 시작됩니다. 말씀을 읽지 않고 듣지 않고 바른 예배자가 된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입니다.

여러분 아합과 같은 세상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원래 남에 떡이 커 보이는 것입니다. 물론 내 것보다 더 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때를 따라 옷을 사 입게 하시고,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주목하여야 합니다.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세상이 좋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마귀에게 속아서는 안 됩니다. 더 크고 더 화려한 것을 따르다보면 여호사밧과 같이 하나님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 어떤 세력보다도 더 강하고 능력이 있는 하나님이 계십니다.(우리의 배경)

▶다른 사람에게 있고 나에게 없는 것을 생각하면 우울해지고 낙심하거나 아합과 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게 있는 것에 감사하며 여호사밧과 같이 힘과 권력과 연합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다른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복음의 비밀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그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이 있어도 복음은 없습니다. 천국은 없습니다. 내게 있는 것을 감사할 때 우리는 찬양할 수 있습니다.

2. 연합군의 공격과 여호사밧(굉장한 위기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본 여호사밧)

아합왕의 전사로 전쟁이 끝이 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여호사밧은 선지자 예후에게 악한 자를 돕고 그와 연합하였음을 야단맞습니다. 마음을 다잡은 여호사밧은 지방을 순회하며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역마다 사람을 세워 재판과 관리를 담당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세 족속이 연합하여서 예루살렘을 침공하기에 이릅니다. 아마도 아합과의 길르앗 전쟁에 나선 것을 알았던 암몬을 중심으로 여호사밧을 치려고 했을 것입니다.

20:1절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이 몇 마온 사람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그런데 여기에 ‘마온 사람’이라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일 사람들입니다. 20장 22절을 보시면 나와 있습니다. 세일은 에서의 자손들입니다. 그들이 바벨론 후기에는 마온으로 불리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부터가 중요한 대목입니다. 여호사밧의 판단과 행동을 보십시오! 그는 더 이상 이웃 나라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두려움을 안고 하나님께 간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유다 백성 모두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됩니다.

(1)출애굽의 하나님을 찾는 왕(역사에 실재적으로 성취되었던 언약을 붙잡음)

여호사밧의 기도 내용을 보면, 아브라함의 자녀들로 가나안 족속을 물리쳐주시고 약속의 땅에 들어오게 만드시고 출애굽의 하나님을 찾습니다.

(2)생사화복과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확신함(6절)

6절 “가로되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막을 사람이 없나이다”

여호사밧은 아합과의 전투로 큰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아무리 강력해도 생사화복과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배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벌하시기 전에 세상이나 주위 사람들을 통하여 회개를 촉구하실 때가 많으십니다.

(선지자 예후의 말을 듣고 깨닫고 회개함) 스스로 겸비하여 마음을 찢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역대기 신학 중에 하나가 ‘기도하면 즉시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역사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성가대 여러분, 그리고 성도님 여러분 혹 어떤 어려움들로 마음이 무너져있으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는 환경 속에 있으신지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여 기도합시다! 더 이상 이웃 나라를 찾지 않았던 여호사밧처럼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께 기도해 보기를 원합니다.

시57:7절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이 시는 다윗의 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는 다윗이 왕으로 있을 때 지은 시가 아니라 광야에서 고백되어진 영혼에 찬양이라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 마음을 흐트러지지 말고 세상에 휩쓸리지 않도록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높은 곳에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확신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여호사밧과 유다에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야하시엘을 통하여 응답해 주십니다.

15절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왕이여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하나님은 여호사밧의 잘못으로 시작된 전쟁이었지만, 회개하고 간구할 때에 전쟁에 승리를 확신해 주셨습니다. 15절 히브리 성경을 직역하면, 뒷부분이“너희가 아니다 그 싸움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다”로 되어 있습니다.

성가대 여러분 그리고 성도님들 우리가 당하는 시험은 내 싸움이 아니라 나의 요새시며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의 싸움입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하나님이 싸우십니다. 하나님은 전쟁에 능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며 우리 앞에 펼쳐 놓으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합시다!

이스라엘 민족은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홍해 바다! 갈라질 수 없는 바다를 갈라놓으신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싸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기도하는 것이며 그 기도를 이루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들입니다. 사람이 만들어지고 회복시키고 구원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당한 문제들이 지금은 갈라지지 않는 바다로 보이고 높은 산과 같을 찌라도 내게 속한 그 모든 전쟁은 여호와께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믿는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들은 몸을 굽혀 경배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18-19절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그러므로 찬양은 하나님의 승리를 믿지 못하는 자들은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성가대와 우리 삶속에 하나님의 승리의 찬양이 끊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3. 여호와를 신뢰하라!

(1)최고의 믿음(고백)이 찬양이다

우리는 찬양을 단순한 노래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찬양은 또 다른 믿음의 선물입니다. 찬양하면 여호와께서 싸우십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깨달으면서 하나님을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우리 안에 강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라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야하시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기쁘게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풍성해졌습니다. 나의 잘못으로 인한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고 구하였더니,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승리를 허락하실 하나님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님 여러분, 우리가 지금 당하는 시험들이 나에 잘못으로 인하였더라도 회개하고 간구하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승리의 말씀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신뢰하게 된 여호사밧과 유다백성들이 했던 일은 군대에 앞서 노래하는 자들을 세워 하나님을 예배하였다는 것입니다. 전쟁에 나가려면 군사들이 앞장을 서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20:21-24절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산 거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거민을 멸한 후에는 저희가 피차에 살육하였더라/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뿐이요 하나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찬양하던 그 순간 하나님이 싸우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세 족속의 연합군은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며 싸우기 시작했고 유다백성들이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며 예배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들은 전리품들을 사흘 동안이나 취하였습니다. 그리고 브라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브라’라는 말이 ‘송축’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에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방 족속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29절 “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한고로”

[결론]

예배 시간에 드려지는 찬양은 노래가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찬양을 가벼이 여기지 않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을 높이는 시간이며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올려드리는 시간입니다.

이 일에 성가대 여러분들이 군대 앞을 행하던 노래하는 자들처럼 앞장 서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워싱턴 초대 교회에 승리의 전리품과 같은 믿음의 고백들이 넘쳐나고(미리 승리)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넘쳐서 소문을 듣고 갈급한 심령들이 모여드는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가 되시기를 원합니다.